시간을 건너온 음악, 현재가 되다

문광주 기자 / 기사승인 : 2026-09-05 09:4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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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낙동아트센터 월드 위너스 위크 9월 3일부터 6일까지 공연
- 첫날.2026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 부문 우승자인 에토레 파가노 독주회
- 한 음 한 음에 내재한 심연의 깊이까지 재현

"시간을 건너온 음악, 현재가 되다 "


* 3일 오후 7시 30분 부산낙동아트센터 콘서트홀, 에토레 파가노 첼로독주회

* 글: 음악평론가 정해성

▲ 첼로: 에토레 파가노(Ettore Pagano), 피아노:일리야 라쉬코프스키

1. 음악의 현재성, 시대를 연결하는 연주자

연주회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하나의 다리다. 작곡가가 음악을 창작한 시간과 청중이 그 음악을 듣는 시간 사이에는 수십 년, 때로는 수백 년의 간극이 존재한다. 악보로 존재하는 과거의 음악을 현재의 소리로 재현하는 것은 연주자의 몫이다. 연주자는 작곡가가 남긴 음악적 이치를 이해해 음악의 기호를 해독하고, 그것을 자신의 감각과 언어로 번역해 현재의 청중에게 전달한다.

부산 낙동아트센터에서는 9월 3일부터 6일까지 4일간 ‘월드 위너스 위크’를 개최한다. 세계 주요 콩쿠르에서 우승한 연주자들의 독주회를 나흘 동안 연이어 만날 수 있는 기회다. 낙동아트센터는 부산에서도 서쪽으로 치우친 명지에 위치해 있어 부산 시민에게도 쉽게 발걸음을 옮기기 어려운 곳이다. 

 

부산의 클래식 소비층이 한정된 현실에서 클래식 시장을 확장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아무리 좋은 공연이라도 네 차례의 무대를 한 달에 걸쳐 분산해 개최한다고 해서 흥행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흘 연속으로 개최한다는 것은 부산의 공연장으로서는 상당히 도전적이고 과감한 기획이다. 

 

부산의 공연장에서 이처럼 나흘 연속 공연장을 찾고 싶은 연주회가 이어지는 경우를 개인적으로는 처음 경험한다. 음악 애호가로서 예매창이 열리는 순간 네 공연을 모두 예매해 두고, 가슴 설레며 ‘월드 위너스 위크’를 기다렸다.

2. 시간을 건너온 음악

‘월드 위너스 위크’의 첫 번째 독주회는 2026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 부문 우승자인 에토레 파가노의 무대다. 그가 선택한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리’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스트라빈스키 <이탈리안 모음곡>, 슈니트케 첼로 소나타,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 마르티누 <로시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모두 과거의 음악적 유산이 후대의 작곡가와 연주자를 통해 새로운 현재를 얻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첫 곡인 스트라빈스키 <이탈리안 모음곡>은 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은 18세기 이탈리아 음악을 바탕으로 스트라빈스키가 20세기의 언어로 재구성한 발레 <풀치넬라>에서 출발해,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와의 협업을 통해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18세기의 이탈리아 음악이 스트라빈스키와 피아티고르스키를 거쳐, 다시 이탈리아인 에토레 파가노를 통해 한국의 청중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다양식주의를 음악적으로 구현한 알프레드 슈니트케의 첼로 소나타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관계가 훨씬 복잡하게 나타난다. 스트라빈스키가 과거의 음악을 현재의 언어로 재구성했다면, 슈니트케에게 과거는 현재와 분리된 대상이 아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 양식이 한 작품 안에서 충돌하고 공존한다. 바로크와 고전주의, 무조성, 대중음악, 종교음악 등이 뒤섞이며 전통적인 음악적 제스처와 현대적인 음향, 서정성과 불협화음, 질서와 해체가 끊임없이 교차한다. 슈니트케는 이러한 음악적 충돌을 통해 현대 사회의 파편화된 현실과 분열된 인간의 내면을 음악 속에 투영했다.

마르티누의 <로시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 역시 프로그램의 또 다른 시간적 축을 형성한다. 로시니의 주제가 마르티누의 시대를 거쳐 다시 파가노에게 전달되는 작품이다. 과거의 주제를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의 언어로 변형하는 변주곡의 형식 자체가 음악의 계승과 현재화를 상징한다. 


3. 절제된 깊이, 파가노의 언어

파가노의 연주는 안정적이고 일관적이라는 점이 강점이다. 그의 활은 바람을 품고 있었다. 사랑과 죽음을 비롯한 갖은 고통을 건너온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관조와 거리가 바람이 되어 그의 활과 함께 불었다. 한 음 한 음에 내재한 심연의 깊이까지 재현하면서도 결코 넘치지 않는다. 흥분하지 않고, 과장하지 않는다. 음색은 연주자의 정체성이다. 파가노는 바람을 품은 깊이 있는 음색으로 ‘애이불비(哀而不悲)’를 재현하며 청중의 심장을 꿰뚫었다. 수없이 들어온 곡들이었지만, 낯설면서도 강력하게 다가왔다.

파가노의 <이탈리안 모음곡>은 차분하게 무대를 열었다. 바로크적인 위엄과 웅장함을 품은 강력한 1악장 ‘Introduzione’에서 파가노는 발레 <풀치넬라>의 배경인 나폴리에 등장한 바람둥이 풀치넬라의 여유로운 시선을 배치했다. 2악장은 짝사랑하는 여인의 창문 아래에서 사랑을 구애하는 애절한 세레나데였지만, 감정은 넘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열정적인 남자로 알려진 이탈리아인 파가노는 이날만큼은 이른바 ‘So cool’했다. 아름답지만 절절하지 않았다. 여릴수록 오히려 더욱 강력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다양한 뉘앙스로 전달했다. 바람둥이 풀치넬라를 둘러싼 여인의 다양한 심리가 펼쳐지는 3악장 ‘Aria’는 빠르고 경쾌하게, 다양한 활의 움직임과 다채로운 표정으로 진행됐다. 파가노는 다이내믹의 스펙트럼을 넓게 설정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다채로운 파편으로 조각날 수 있는 모음곡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냈다.


뒤로 갈수록 그의 활이 품은 바람은 위력을 발휘했다. 상실감이 표현된 뒤 4악장 타란텔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잠시도 지상에 발이 닿지 않는 듯한 격렬한 춤인 타란텔라에서도 파가노는 속도에 함몰되지 않았다. 음모와 기지, 질투가 뒤엉킨 광란의 축제를 지켜보는 서술자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어지는 미뉴엣과 해피엔딩은 이 모든 난장판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후기처럼 다가왔다. 이탈리아 코미디 특유의 위트와 역설이 살아 있었다. 기존의 과거 서사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현대적 해석을 제시한 파가노의 <이탈리안 모음곡>은 아름다우면서도 의미심장한 출사표였다.

파가노의 슈니트케 첼로 소나타는 압도적이었다. 슈니트케 음악이 지닌 복합적인 층위를 하나의 서사로 통합했다. 꽉 찬 음색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다이내믹, 프레이징의 조화로운 변화가 개별적인 효과로 흩어지지 않고 작품 전체의 구조를 구축해갔다. 특히 서로 상반된 성격의 음악적 요소들이 등장할 때 그 차이를 과장하기보다 하나의 긴 호흡 안에서 연결함으로써 작품의 긴장감을 유지했다. 과거의 양식이 현대적인 음향 속에서 낯설게 되살아나는 슈니트케의 세계가 명확하게 구현된 연주였다.

2부의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에서는 파가노의 음악적 강점이 더욱 분명해졌다. 이 작품에서 두드러진 것은 개별 악장의 아름다움보다 네 악장을 관통하는 통일성과 일관성이었다.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은 악장마다 다른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전체 작품을 하나의 서사로 묶었다. 

 

특히 3악장과 4악장의 연결이 인상적이었다. 3악장은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의 심장이다. 파가노는 더 이상의 슬픔과 고뇌가 존재할 수 없을 정도의 절절한 내면의 독백을 고요하게 펼쳐냈다. 연주가 끝난 뒤에도 울림은 지속됐고, 그 울림을 4악장이 이어받았다. 4악장은 새로운 전환의 장으로 고뇌에서 벗어나 비상하는 악장이지만, 파가노는 비상으로의 전환을 극단적인 대비로 만들지 않았다. 비상하는 제2주제 역시 갑작스러운 환호나 슬픔의 해소로 재현하지 않았다. 3악장에서의 내면의 고독과 우수, 향수는 4악장에서도 지속되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아픔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을 뿐이다. 파가노의 라흐마니노프에서 내면의 고뇌는 날려버려야 할 감정이 아니라 품고 가야 하는 생의 한 과정이었다. 이 부분은 이전의 다른 연주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웠던 독창적인 해석이었고, 이날 파가노의 음악이 지닌 힘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대목이었다.

완벽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이날의 연주가 그에 가까웠다고 느껴질 만큼 인상적인 무대였지만, 피아노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미스터치와 음의 누락이 반복됐고, 리듬과 템포의 조율에서도 불안정성이 나타났다. 특히 라흐마니노프 3악장의 피아노 솔로에서는 파가노의 스타일과 달리 과도한 루바토와 다이내믹이 깊이 있는 정서보다는 다소 가벼운 감상으로 흐르는 순간이 있었다. 파가노의 첼로가 시작되면서 템포는 조정되고 서사는 다시 회복됐지만, 이후에도 피아노가 그 흐름에 균열을 만드는 순간들이 있었다.

특히 복잡한 리듬 속에서 반주자와의 호흡이 중요한 마르티누 <로시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더욱 두드러졌다. 화성의 하강 연타에서 지속적으로 불안정성이 나타났고, 느려진 템포 속에서 파가노는 테마를 이어가야 했다. 리듬과 성격, 템포가 끊임없이 변주하는 곡에서도 피아노가 파가노의 흐름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면서 조마조마한 순간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파가노의 연주는 자신이 해야 할 음악적 방향을 끝까지 명확하게 제시했다.

앙코르곡으로 라흐마니노프 <보칼리제>를 통해 아름다웠던 순간을 멈추고 싶지만, 결국 시간이 흘러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움을 첼로 선율을 통해 달래고 있는 순간, 연주는 갑자기 중단됐다. 반주자가 악보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상황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듯이, 악보는 실수로 빠뜨릴 수도 있다. 대체된 앙코르곡 생상 <백조> 역시 남달랐다. ABA’의 3부 형식에서 연결부를 통해 풍부한 우아함을 재현한 A부분과 단조를 여행한 뒤 돌아온 A’는 확연히 달랐다. 파가노의 A’는 프레이징은 이어가면서도 한 음 한 음이 독자적으로 존재했다. 익숙한 곡을 낯설게 들려주는 그의 재현에 다시 한 번 감탄하며 연주회장을 나섰다.

4. 음악은 다시 기억이 된다

파가노의 음악은 감정을 억눌러 절제하지도, 과도하게 표현하지도 않는다. 감정과 음표가 공존하는 그 절묘한 지점을 명확하게 파고든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안정감 속에서 깊은 상실감을 자아내는 한 편의 꿈, 환영, 환상을 청중에게 재현한다. 음악은 과거에 쓰였지만 연주되는 순간 현재가 되고, 연주가 끝나는 순간 다시 기억으로 남는다. 꿈과 음악은 그렇게 현재와 과거의 경계를 오간다. 중단된 앙코르 <보칼리제>를 에토레 파가노의 연주를 통해 완곡으로 들을 수 있는 날이 언젠가 부산의 청중에게 다시 주어지기를 기대한다.

評 정 해 성 (음악평론가)

[더사이언스플러스=문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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